[칼럼] 생각의 깊이

작성자 이상우 ·

어제, 제가 멘토로 모시는 대표님과 미팅을 하며 느낀 것이 있습니다.

멘토님과 함께 어떤 서비스에 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가격은 1억 5,000만원.

럭셔리하고, 부유층만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최고급 상품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든 생각은 단순했습니다.
“와, 비싸다. 나는 이용할 엄두도 안 나네.”
제 지갑은 그것을 소비할 능력이 안됩니다.

“내 주변에 누가 이걸 사 줄 수 있을까?”
그런데 저는 곧바로 막혔습니다.
나는 주변에 그런 걸 소비할 시장이 없습니다.
그 이상은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멘토님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그 너머를 봤습니다.

“법인 영업 하는 사람들과, 고소득자와 링크 있는 사람을 연결해보자.”

—
같은 날,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봤습니다.

한 중학생이 용돈을 모아 3만원짜리 햄버거를 사 먹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글쓴이는 이것을 보고 충격이라고 했습니다.

“눈만 높아진다.”

본인은 고급진 것을 이용해본 적이 없는데, 자녀가 그런 소비를 하는 게 사치심, 허영심 같다며 어떻게 막을지를 고민하는 글이었습니다.
—
세 반응을 나란히 놓고 보면, 벽을 넘는 정도가 다릅니다.
저는 첫 번째 벽에서
“나는 소비자가 아니다.”
그 너머를 봤습니다.

그리고 결국 두 번째 벽에서 멈췄습니다.
“내 주변엔 이걸 살 사람이 없다.”

멘토님은 그 두 벽을 다 넘었습니다.

“내 네트워크 밖에는 있다. 법인 영업하는 사람, 고소득자와 링크 있는 사람.”

인터넷의 그 부모는 아예 벽을 넘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안 해본 거니까, 저건 잘못된 거다.”
—
기준이 ‘나’인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누구나 자기 경험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부모도, 멘토님도 모두 ‘나’에서 출발했습니다.

차이는 거기서 멈추느냐, 계속 나아가느냐입니다.
저는 “나는 못 쓴다”를 넘어 “내 주변엔 시장이 없다”까지는 갔지만, 거기서 멈췄습니다.
멘토님은 “내 네트워크가 아니어도, 다른 네트워크는 있다”까지 나아갔습니다.
부모는 첫 번째 벽조차 넘지 않고, “나는 안 해봤다”를 그대로 “저건 사치다”로 확정지었습니다.
—
생각의 깊이는 벽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벽을 몇 개 넘느냐로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 벽: 나는 저걸 누릴 수 없다.
두 번째 벽: 나는 저걸 연결할 방법도 없다.
세 번째 벽: 그럼에도 저걸 원하는 사람과 가진 사람은 어딘가에 있다.

얕은 생각은 첫 번째 벽에서 판단을 내려버립니다. 깊은 생각은 벽을 마주할 때마다 “그 너머는?“이라고 한 번 더 묻습니다.
—
중학생의 소비도 같은 틀로 볼 수 있습니다.
용돈을 모았다는 건, 그 아이 나름의 계획과 절제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부모의 눈에는 그 과정은 보이지 않고, 결과의 가격표만 보입니다. 그리고 그 가격표는 곧바로 “사치”라는 딱지로 번역됩니다.

내가 안 해본 걸 자녀가 하면 낭비이고, 내가 해본 걸 자녀가 안 하면 무지입니다.
—
멘토님을 보면서 배운 건 결국 이것입니다.

벽을 마주하는 건 누구나 같습니다.
“나는 못 한다”, “나는 방법이 없다”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듭니다.

차이는 거기서 멈추느냐, 한 번 더 “그 너머는?“이라고 묻느냐입니다.

내 지갑의 한계, 내 네트워크의 한계가 내 사고의 한계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생각의 깊이입니다.
배워서쌀먹이 함께합니다.

블로그 글 목록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