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17년전, 플라스틱 욕조안의 인연

작성자 이상우 ·

2007년입니다.
바르셀로나 소속, 스무 살의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리오넬 메시.

그날 그는 축구가 아니라, 목욕을 시키고 있었습니다. 품 안의 아기는 아직 걸음마도 못땐 생후 6개월.
아기의 이름은 라민 야말.

우연이었습니다.

유니세프와 지역 신문사가 함께 만든 자선 달력.
야말의 가족은 추첨에 당첨돼 이 촬영에 참여했습니다. 그날 카메라 앞에 선 선수가, 하필 메시였습니다.

그게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19년이 흘렀습니다.

아기는 자라서 축구선수가 되었고,
19년전의 메시와 마찬가지로 바르셀로나와 스페인의 에이스가 됐습니다.

그때 스무살의 청년 메시는 지금 39세의 나이로, 축구의 신으로 불립니다.

그리고 2026 월드컵 결승에서 두 사람은 트로피를 놓고 마주 섭니다.

목욕시켜 주던 손과, 목욕받던 아기가…

이 사진, 사실 오랫동안 세상에 없었습니다.

야말의 아버지, 무니르 나스라위.
그는 이 사진을 17년 동안 서랍 속에 넣어뒀습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들이 축구선수가 됐을 때, 메시와 비교되는 게 싫었습니다.

"이제 막 축구를 시작하는 어린 아들이 '메시의 축복을 받은 아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부담감을 느끼는 것을 막기 위한 아버지로서의 깊은 배려였습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내 아들이 메시에게 오랫동안 축구를 할 수 있도록 축복을 내린것이다“

그 마음, 이해가 갑니다.
한 장의 사진이, 아이의 미래를 규정해버릴까 봐.
기대가 부담이 될까 봐. 그래서 숨겼습니다.

2024년이 돼서야, 인스타그램을 통해 비로소 세상에 꺼냈습니다.
그때는 야말이 이미, 스스로 증명하고 난 뒤였습니다. 사진 없이도 바르셀로나의 유망주로 인정받았으며, 스페인 국가대표 최연소데뷔를 했습니다.

저는 이 사진에서 하나를 봅니다.

오늘의 평범한 만남이, 내일의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메시도 몰랐습니다.
그냥 눈앞의 아기를 씻겨줬을 뿐입니다.
야말의 부모도 몰랐습니다.

그냥 추첨에 당첨됐을 뿐입니다.

불교에는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억지로 만들 수 없습니다. 때가 되면, 만날 사람은 만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입니다.

지금 내 앞의 사람에게, 지금 할 수 있는 정성을 다하는 것.
그 정성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는 시간만이 압니다.

오늘 스쳐 가는 인연도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다시 만날지 모릅니다.

야말의 아버지처럼, 우리도 압니다.
지금 이 순간의 의미는, 지금은 알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조급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증명은 나중에 저절로 따라옵니다.

지금 할 일은, 그저 눈앞의 정성을 다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니 오늘, 눈앞의 사람에게 조금 더 최선을 다해보시죠.

배워서쌀먹이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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