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스폰받다”의 진짜 의미

작성자 이상우 ·

스폰서, 라는 단어


  1. 단어의 두 얼굴

"스폰받다."

이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대부분 한쪽 이미지부터 떠올립니다.
룸살롱, 조건만남, 성 접대.

그런데 같은 뿌리를 가진 "스폰서"라는 단어는 전혀 다른 얼굴도 가지고 있습니다.
후원, 응원, 팬덤.

똑같이 "스폰"이라는 세 글자에서 시작했는데, 한쪽은 추악하고 한쪽은 아름답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혐오의 단어, 누군가에게는 존경의 단어.

어쩌다 하나의 단어가 이렇게 극단으로 찢어졌을까요.
그 답을 찾기 위해, 저는 500년 전 바다로 거슬러 올라가 봤습니다.


  1. 신대륙을 만든 건, 사실 스폰서였다

콜럼버스는 혼자 신대륙을 발견하지 않았습니다.
바스코 다 가마도 혼자 인도항로를 뚫지 않았습니다.
그 뒤에는 항상 돈을 댄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야기는 두 사람보다 반세기 앞서, 포르투갈의 엔리케 왕자로부터 시작됩니다.
엔리케 왕자는 평생 단 한 번도 직접 항해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대신 항해학교를 세우고, 조선 기술을 지원하고, 아프리카 서해안을 탐험하는 항해사들에게 자금을 댔습니다.
그래서 그는 "항해왕자"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가 뿌린 항해술과 조선 기술이라는 씨앗은, 세대를 넘어 자라났습니다.
엔리케가 세상을 떠난 뒤, 그 유산 위에서 콜럼버스와 바스코 다 가마가 등장합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항해는 스페인 이사벨 여왕의 자금으로 가능했습니다.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항로 개척 뒤에는 포르투갈 왕실의 투자가 있었습니다.

시대는 달랐지만, 방식은 같았습니다.
왕실은 그냥 돈을 준 것이 아닙니다.

실패하면 함께 잃고, 성공하면 함께 얻는 구조였습니다.

새로운 항로, 새로운 무역, 새로운 부.
왕실과 항해사는 리스크와 보상을 나누는 관계였습니다.

이것이 대항해시대, 그 자체입니다.

저는 이 역사를 게임으로 처음 만났습니다.
바로 "대항해시대"라는 게임입니다.

이 게임 속에서도 항해사는 왕실이나 상단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고, 미지의 바다로 떠납니다.
그리고 신대륙을 발견하고, 무역로를 개척하며 그 성과를 함께 나눕니다.

게임이든 역사든, 본질은 같습니다.

스폰서의 원형은 "공동의 모험"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자본을 걸고, 누군가는 실행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결과를 함께 나눴습니다.

이것이 스폰서라는 단어의 본래 얼굴입니다.


  1. 왜곡된 이미지의 기원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스폰서는 오염된 단어가 되었습니다.
자본과 권력의 비대칭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특히 연예계에서 "스폰서"는 가장 어두운 방식으로 쓰였습니다.
힘을 가진 자가 자본을 무기로 삼고, 그 대상은 대부분 여성이었습니다.
"스폰서를 잡았다"는 말이 곧 성 매매를 의미하는 은어가 되었습니다.
재능과 노력이 아니라, 누구에게 선택받느냐가 성공을 좌우하는 것처럼 포장되었습니다.

리스크를 함께 나누는 파트너가 아니라, 성을 사는 자와, 성을 파는 자.
그 구조 속에서 단어의 본질은 사라지고, 가장 추악한 이미지만 남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스폰서라는 단어를 재정의 해야합니다.
스폰서는 원래 그런 단어가 아닙니다.


  1. 스포츠와 팬덤 — 스폰서의 재탄생

같은 단어라도, 스포츠에서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유니폼에 새겨진 기업 로고, 경기장을 둘러싼 광고판, 중계 화면 위에 뜨는 브랜드.
이것도 엄연히 "스폰서"입니다.

하지만 이 관계는 착취가 아닙니다.
기업은 선수와 팀에게 자금을 지원하고, 선수와 팀은 시청자에게 브랜드를 노출시킵니다.
경기가 잘 될수록, 선수가 유명해질수록, 기업의 브랜드 가치도 함께 올라갑니다.

수많은 시청자의 눈이 모이는 곳에 기업이 함께하고, 그 노출이 곧 마케팅이 됩니다.
선수는 지원을 받아 더 좋은 성과를 내고, 기업은 그 성과에 자연스럽게 브랜드를 실어 보냅니다.
누가 누구를 착취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필요가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구조입니다.

이것이 같은 "스폰서"라는 단어가, 연예계에서는 어두운 얼굴을, 스포츠에서는 건강한 얼굴을 갖게 된 이유입니다.
본질은 자본이 어떻게 쓰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스포츠에는 기업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경기장을 채우는 또 다른 스폰서, 바로 서포터입니다.

저는 27년째 포항 스틸러스 서포터즈로, 그리고 붉은악마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서포터는 돈이 아니라 목소리를 걸고, 시간이 아니라 마음을 겁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경기장을 채우고, 목이 쉬도록 응원가를 부릅니다.

기업의 스폰서십이 자본을 거는 것이라면, 서포터의 스폰서십은 존재 자체를 거는 것입니다.

27년을 함께하며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승패는 지나가지만, 함께한 시간은 남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쌓여 팀의 역사가 됩니다.

서포터가 없는 팀은, 기업의 로고만 붙어 있는 빈 경기장에 불과합니다.

결국 팀을 진짜로 완성시키는 것은, 끝까지 곁을 지키는 서포터입니다.

최근 들어, 스폰서라는 단어는 개인의 영역에서도 다시 본래의 얼굴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트위치의 후원, 유튜브의 멤버십, 크라우드펀딩.
이것들은 일방적인 시혜가 아닙니다.

특히 크라우드펀딩은 대항해시대의 스폰서십과 가장 닮아 있는 구조입니다.

크라우드펀딩에서는 한 명의 왕실이 아니라, 수백 수천 명의 후원자가 십시일반으로 자금을 모읍니다.
프로젝트를 만드는 사람은 아이디어와 실행력을 걸고, 후원자는 그 가능성에 돈을 겁니다.
그리고 이 관계는 절대 일방적이지 않습니다.

후원자는 그냥 돈만 내고 끝나지 않습니다.
얼리버드 리워드로 제품을 먼저 받고, 완성 과정을 지켜보고, 때로는 의견을 내기도 합니다.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후원자도 함께 잃습니다.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후원자는 "내가 저것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탰다"는 자부심을 얻습니다.

와디즈, 킥스타터 같은 플랫폼을 떠올려 보십시오.
좋은 아이디어 하나가 수백 명의 스폰서를 만나 세상에 나옵니다.
그 수백 명은 소비자가 아니라, 신대륙을 함께 찾아 나선 투자자에 가깝습니다.

이것은 마치 대항해시대의 항해사가, 한 명의 왕실이 아니라 여러 상단으로부터 동시에 자금을 지원받는 것과 같습니다.
리스크는 잘게 나뉘고, 대신 참여의 문턱은 낮아졌습니다.
누구나 왕실이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시청자는 크리에이터의 가치에 투자합니다.
크리에이터는 콘텐츠로 보답합니다.
후원자는 프로젝트의 가능성에 투자합니다.
창작자는 완성된 결과물로 보답합니다.

팬덤은 더 이상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닙니다.
가치를 알아보고, 함께 성장을 응원하는 존재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대항해시대의 상단과 항해사가 맺었던 관계와 닮아 있습니다.


  1. 1인기업가에게 스폰서란 — 프로슈머 시대의 재정의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의 1인기업가에게 스폰서란 무엇일까요.

과거의 스폰서는 갑을관계였습니다.
계약서에도 "갑"과 "을"이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계약서에서조차 갑을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갑"은 "발주자"로, "을"은 "수행자" 혹은 "제휴 파트너"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용어의 변화가 아닙니다.
관계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이제는 프로슈머의 시대입니다.
일방적으로 후원받는 자가 아니라, 함께 가치를 만들어가는 사업 파트너.

배워서쌀먹이 지향하는 스폰서십도 여기에 있습니다.
영향력을 만들어가며, 제휴된 기업과 함께 성장하는 구조.
누가 누구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항해하는 관계.


  1. 스폰서의 본질로 돌아가기

결국 좋은 스폰서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함께 항해하는 사람입니다.
리스크를 나누고, 성과를 나누고, 신뢰를 나누는 사람입니다.

대항해시대의 항해사와 상단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의 크리에이터와 팬덤이 그런 것처럼.
그리고 앞으로의 1인기업가와 파트너 기업이 그래야 하는 것처럼.

이제는 일방적으로 베푸는 시혜가 아닙니다.
AI시대의 스폰서는 동행입니다.

배워서쌀먹이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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