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법은 무조건 지켜야 할까?

작성자 이상우 ·

한 사람이 쓰러졌습니다. 숨을 쉬지 않습니다. 주변에 의사는 없습니다. 응급처치 자격증도 없는, 유튜브로 본 기억만 있는 한 사람이 손을 댔습니다.

심폐소생술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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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이 순간 무엇을 말해줄까요.

무자격자의 의료행위는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잘못되면 책임을 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람을 범법자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생명을 구한 사람이라고 부르고, 선한 사마리아인 법을 통해 구제받습니다.

대한민국 국법이 제정되고 60년 만인 2008년, 이 법은 제정되고 시행됐습니다.
법조차도 60년이 걸려서야, 도덕이 이미 알고 있던 것을 뒤따라온 것입니다.

여기서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법과 도덕, 무엇이 먼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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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사회가 합의한 최소한의 약속입니다. 도덕은 그 약속보다 더 오래된, 더 깊은 인간의 판단입니다. 법이 만들어지기 전에도 사람은 생명을 구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법은 그 판단을 뒤늦게 문서로 옮긴 것뿐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판단은 지금 움직이는데, 문서는 나중에 도착합니다. 이 시차 속에서 누군가는 법보다 먼저 손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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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시차가 생기는가

앨빈 토플러는 《부의 미래》에서 이 어긋남의 구조를 짚어냈습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기관들은 저마다 다른 속도로 달립니다.

책에서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에 비유를 합니다.

기업은 시속 100마일.
정부 관료조직은 25마일.
학교는 10마일.
그리고 법은, 시속 1마일.

법은 가장 늦게 따라옵니다.

토플러는 이것을 비동시화(Desynchronization)라고 불렀습니다.
100마일로 달리는 시장을 1마일로 기어가는 법이 통제하려 할 때, 마찰은 필연적이라는 것입니다.

이 마찰은 시장에서만 벌어지지 않습니다.
생명이 위급한 순간, 사람의 판단은 즉시 움직입니다. 법이 그 뒤를 따라오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토플러는 이 간극이 왜 생기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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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간극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세계경제포럼(다보스 포럼)의 창시자, 클라우스 슈밥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의 저서인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에서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을 속도, 범위, 시스템 충격으로 정의합니다.

기술 혁신은 기하급수적으로 일어납니다.
반면 정부의 입법 체계는 여전히 선형적입니다.

2차, 3차 산업혁명 시대의 관료주의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기술은 매달 배로 늘어나는데, 법은 매년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슈밥은 이 격차를 규제 지체라고 부르며, 해법도 함께 제시합니다. 법이 완성되기를 기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신 정부와 기업이 실시간으로 협력하며 규칙을 계속 수정해 나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것을 애자일 거버넌스(Agile Governance)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법을 한 번에 완벽하게 만드는 대신, 시장이 움직이는 동안 함께 움직이며 고쳐 나가는 방식입니다.

토플러가 문제를 진단했다면, 슈밥은 답의 방향을 제시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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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어떻게 구현되는가

한국에도 이 개념을 제도로 옮긴 장치가 있습니다.

규제 샌드박스입니다.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가 있는데, 관련 법이 아직 없거나 애매하게 걸리는 경우.
일정 기간, 일정 규모 안에서 규제를 적용하지 않고 먼저 시장에 내보내 봅니다.

아이들이 모래놀이터에서 안전하게 실험하듯, 사업자도 정해진 틀 안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쌓인 데이터를 근거로, 법을 나중에 정비합니다.

2019년 도입된 이후 이 제도를 통해 발굴된 혁신 서비스는 1,000건이 넘습니다.

그중 400건 이상이 실제 시장에 출시됐습니다.

ICT 융합, 산업 융합, 모빌리티, 혁신금융, 스마트도시, 순환경제. 분야별로, 또 지역 단위의 규제자유특구로도 운영됩니다.

2026년 들어 금융 분야 샌드박스는 한 번 더 손질됐습니다.
핀테크 기업이 샌드박스에 들어오는 문턱을 낮추고, 졸업한 뒤에는 제도권 안으로 자연스럽게 안착하도록 지원 체계를 다시 짰습니다.

시장이 먼저 뛰어나가고, 법이 그 뒤를 쫓아가며 다듬는 구조.
토플러가 말한 1마일짜리 법이, 조금씩 속도를 내는 방법을 국가 단위에서 찾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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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개인의 판단으로

제도는 이렇게 조금씩 시차를 좁혀갑니다.

하지만 규제 샌드박스도, 애자일 거버넌스도, 결국 사람이 먼저 움직인 다음에야 작동합니다. 법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순간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쓰러진 사람 앞에서, 법원의 허락을 기다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순간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법 조문이 아니라 개인의 판단입니다.

무엇이 더 소중한가에 대한 판단입니다.

이것은 법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법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지켜져야 합니다. 법 없이는 사회가 유지되지 않습니다.
다만 법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순간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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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도 다르지 않습니다.

새로운 서비스, 새로운 결제 방식, 새로운 교육 모델은 항상 법보다 먼저 세상에 나옵니다. 그 사이 구간을 걷는 사람들은 늘 있어 왔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그 구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걷는 것과, 모르고 걷는 것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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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최소한의 기준입니다. 도덕은 그 기준을 만든 이유입니다.

이유를 잊은 채 기준만 따르면, 사람이 쓰러진 순간에도 손을 대지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기준을 무시한 채 이유만 따르면, 사회는 혼란스러워집니다.

법은 뒤에서 따라옵니다. 사람의 가치관은 그보다 앞서 걷습니다.

그 간격을 이해하는 사람이, 진짜 기회를 봅니다.

배워서쌀먹이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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