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노동이 사라지면,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까?
“노는 게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라~“
2003년 뽀로로 만화가 나오며 수십 년째, 전 세계 아이들이 이 노래를 부르며 자랐습니다.
https://youtu.be/0PKiYRfbh6c?feature=shared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리 아이들에게는 “노는 게 제일 좋다”고 가르치면서, 정작 어른이 되면 “돈 버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을 바꿉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1995년 저서 「노동의 종말」에서 이미 경고했습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노동은 줄어들 수밖에 없고, 문제는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 자체가 아니라, 노동 없이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라고.
그로부터 30년.
AI는 그 경고를 현실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아이들의 노래가 옳았던 것은 아닐까요.

“숨바꼭질 할 사람, 여기여기 붙어라.”
어릴 적, 이 한마디면 충분했습니다.
놀이터 어디선가 흩어져 있던 친구들이, 약속이나 한 듯 모여들었습니다.
숨바꼭질이든, 얼음땡이든, 규칙은 그때그때 만들면 그만이었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모였고, 누가 돈을 주지 않아도 웃었습니다.
그것이 놀이였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제 우리는 “여기여기 붙어라” 대신,
“몇 시까지 출근하세요”라는 말에 붙어 삽니다.
노동이 삶의 중심이 되면서, 놀이는 노동이 끝난 자투리 시간에나 허락되는 것이 되었습니다.
퇴근 후 잠깐, 주말 잠깐.
놀이는 노동의 보상이자 부산물로 전락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공장 자동화는 이미 수십년전에 시작이되었고, AI가 노동을 더 빠르게 대체하기 시작했습니다.
계산도, 문서도, 심지어 창작의 영역까지도 기계가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해내고 있습니다.
노동이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게 된 시대.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바뀝니다.

“노동이 사라지면,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저는 이 질문의 답이,
다시 “여기여기 붙어라”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었던 이유는, 노동을 잘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함께 모여 규칙 없는 규칙을 만들고, 의미 없는 것에 몰입하고, 그 과정 자체에서 기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놀이는 결과를 위한 수단이 아니었습니다.
놀이 자체가 목적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영어에도 “여기여기 붙어라”와 닮은 표현이 있습니다.
“쉘 위 플레이?”
“함께, 놀아볼까?”라는 뜻입니다.
원어민 친구들은 일상에서 “Shall we”를 쓸 때, 일부러 격식을 차리는 척 장난을 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어로 치면,
친구에게 “공주님, 이제 이동하실까요?”,
“자, 시작해 보실까?” 하고
짐짓 점잔을 빼며 재치 있게 건네는 말투에 가깝습니다. 춤을 청할 때 쓰는 “쉘 위 댄스?”처럼,
무언가를 함께 시작하자는 다정한 제안입니다.
이 말에는 강요가 없습니다.
의무도 없습니다.
그저,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과 약간의 장난기만 있을 뿐입니다.
노동이 “해야 한다”의 언어라면,
놀이는 “하고 싶다”의 언어입니다.
물론 이런 반문이 있을 것입니다.
“결국 자유로워지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맞습니다.
놀이하려면, 최소한의 생계는 해결되어야 합니다. 굶으면서 놀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짚어야 할 것은, “돈을 버는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에는 시간을 갈아 넣어야 돈을 벌었습니다.
9시부터 6시까지, 몸과 시간을 저당 잡혀야 했습니다. 그런데 AI는 이 공식을 흔들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만든 콘텐츠가, 코드가, 시스템이 잠자는 동안에도 돈을 법니다.
소수의 자본가만 누리던 “레버리지”가, 이제 노트북 한 대만 있어도 접근 가능한 시대가 됐습니다.
그러니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남는 시간에 무슨 노동을 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노는 동안에도 돈이 들어오도록 할 것인가.”
이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는 사람만이, 진짜 놀이하는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AI 시대, 우리는 두 가지 갈림길 앞에 서 있습니다.
1. 노동에서 밀려나 무기력한 인간이 될 것인가.
2. 노동에서 자유로워진 놀이 하는 인간이 될 것인가.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결국 우리가 “놀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게으름의 놀이가 아니라, 몰입의 놀이.
소비의 놀이가 아니라, 창조의 놀이.
혼자만의 놀이가 아니라, “여기여기 붙어라”로 모이는 놀이 말입니다.
배워서쌀먹이 하고 있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1인기업가로써 디지털을 배우고, AI 도구를 익히는 과정이 의무감이 아니라 놀이가 될 때, 비로소 오래 지속됩니다.
“해야 해서”가 아니라 “하고 싶어서” 배우는 사람은, 멈추지 않습니다.
노동이 사라지기 전에,
제가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쉘 위 플레이?”
- 해당 이미지는 AI를 사용하여 생성했습니다.